‘스텔라 블레이드’는 업계에 기념비적인 성과를 남긴 게임입니다. 그동안 ‘AAA·콘솔게임 불모지’로 여겨졌던 대한민국에서도, 글로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콘솔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죠.
실제로 스텔라 블레이드는 PC 버전 출시 하루 만에 스팀 최대 동시접속자 수가 약 18만 3,830명을 기록하며 전체 순위 6위에 올랐습니다. 시프트업는 이 게임 덕분에 2025년 2분기 매출 1,124억 원, 영업이익 682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분기 실적을 달성했죠.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72.4%, 영업이익 51.6%이 올랐고요.
그렇다면 ‘스텔라 블레이드’ 개발팀의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시프트업 김형태 대표는 엔씨소프트에서 ‘블레이드앤소울’을 비롯한 게임의 아트 총괄 디렉터로 일한 바 있고, 스텔라 블레이드에서도 직접 게임 디렉터의 역할을 함께 수행했습니다.
한 유튜브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김형태 대표가 언급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팀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대표는 “처음엔 게임의 방향성이나 아트 디자인에 대해 많은 피드백을 주고받았지만, 나중엔 몇 마디면 통했다”고 했죠.
사실 이 말은 그저 ‘호흡이 잘 맞았다’고 읽힐 수 있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아트의 방향성, 게임의 특징 등에 관해서 팀원들과의 오랜 시간 대화와 피드백이 쌓인 끝에, 팀이 ‘같은 그림’을 공유하게 됐다는 의미거든요.
김형태 대표는 아티스트 출신답게 표현에는 섬세하지만, 방식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좋은 콘셉트를 위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팀원들이 이해할 때까지 풀어내는 스타일로 보이죠. 그는 “팀원들이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되면 오히려 제안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지도자가 아닌, 일종의 ‘통역사’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스텔라 블레이드 팀의 공기를 만든 셈입니다.
비슷한 분위기는 넥슨게임즈의 ‘블루 아카이브’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블루아카이브’ 안경섭 PD는 김용하 총괄 PD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부장님께서 입사나 이동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직접 ‘비전 PPT’를 브리핑하셨어요. ‘우리 게임은 어떤 게임이고, 무엇을 중요시하는가’를 설명하시면서요. 신규 입사자들을 모아 ‘왜 MX인가’라는 제목의 발표를 직접 하셨습니다.”
안경섭 PD는 김용하 총괄 PD가 새로운 인원이 합류할 때마다 일종의 ‘세계관 설명회’를 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작성된 PPT 자료는 개발과정을 거쳐 변화한 방향성까지 담고 있었었다고요.
이와 같은 ‘수고’의 의도는 명확해 보이죠. 새로 입사한 인원들이 게임의 방향성·비전을 공유하고, 빠르게 진정한 ‘팀’이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거죠.
게임 개발이 이제 ‘대기업’의 영역이 된 지금은 소위 ‘양복쟁이’들이 게임을 기획하는 게 어색하지 않지만, 사실 게임 개발사의 일은 ‘아티스트’적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습니다. 캐릭터, 스토리, 음악, 세계관 등, 수많은 요소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업물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게임은 업계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소비자들의 ‘감각’을 쫒아가야 할 필요성이 있죠. ‘상명하복’ 식의 경직된 조직문화와는 어울리지 않고, 건전하지만 때때로 격렬한 토론과 치밀한 협업이 필요합니다.
최근 논란이 된 ‘카제나(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의 경우엔 완벽한 ‘반면교사’의 사례로 볼 수 있겠습니다. 총괄 PD가 스토리 원안을 일방적으로 수정했지만, 결과물은 내부적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죠. 작가진이 대거 퇴사하고, 부랴부랴 껍데기를 완성해 내놓은 게임은 소비자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스토리 전면 재개편’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리셋을 선언했죠.
스마일게이트의 산하에서 기술도 예산도 충분히 지원받았지만, ‘팀의 분위기’가 결국 게임을 망가뜨렸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좋은 게임은 기술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그 안에는 늘 ‘살아 숨쉬는 팀’이 있습니다. 개발자들이 방송을 통해 유저들 앞에 전면적으로 나서게 된 원인 역시, 이같은 분위기를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