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드 더 월’의 부제는 ‘좀비 국경 포위전(Zombie Border Siege)’입니다. 이용자는 위에서 내려오는 블록을 회전시키고 배치해, 국경으로 다가오는 무리를 막아야 합니다. 방어에 실패하면 화면에는 국경이 뚫렸다는 뜻의 ‘Border Breached’가 뜹니다. 완성한 줄도 사라지지 않아 블록이 계속 누적됩니다.
사실 게이머들에게 블록을 돌려 빈칸을 채운다는, 테트리스의 조작방식은 무척이나 친숙합니다. 다만 백악관 버전에서는 그 당연한 조작 행위에 의미를 덧붙인 거죠.
플레이어에게는 블록을 계속 없애 나가는 단순하고 흥미로운 작업 대신, 빈 곳을 메워 국경을 방어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거기다 막아야 될 대상이 ‘좀비’라는 설정도 붙었죠. 게임 속 좀비는 보통 대화하거나 사정을 살펴야 할 상대가 아니라, 다가오기 전에 막아야 하는 적입니다. 이를 현실의 국경 문제와 결합하면, 국경을 넘는 사람을 일단 위협으로 바라보도록 상황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게 아무래도 이민자 이전에, 사람에 대한 묘사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죠.
사실 게임의 문법만으로는 바라봤을 때는 적절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잘 만들어진 게임은 게임 내의 목적이 뭐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직관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이 같은 지점에서 백악관은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정책 홍보용’으로서는 부적절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식 창구를 통해, 이민자를 ‘좀비 떼’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정책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정책 홍보의 방법(저작권 위반)과 표현에 있어서 비판을 피하기가 어려웠던 거죠.
다만 이같은 게임이 화제로 오르내리면서, 이미 노이즈마케팅으로서의 ‘정책 홍보’ 역할은 충실히 수행해 냈다는 평가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테트리스 측이었죠.
게임을 떠올리게 하는 데 꼭 이름이나 로고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떨어지는 블록과 익숙한 화면만으로도 이용자는 테트리스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홍보하는 쪽에서는 게임을 처음부터 설명할 수고를 덜지만, 원작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메시지에 브랜드가 연결될 가능성이 생기죠.
덕텍에 테트리스 측은 즉각 반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테트리스 컴퍼니는 9월 4일 자신들이 ‘빌드 더 월’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저작권 침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경고했습니다. 동시에 사람들을 연결하고 함께하게 하는 것이 테트리스가 추구하는 가치라며, 백악관과 거리를 뒀죠.
요즘의 게임업계에선 특정 가치관이나 정치 사상과 엮이는 게 점점 대형 리스크가 되고 있는 추세인데요.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해명만으로도 오해는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난데없는 상황에 테트리스 측도 식은땀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