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미국 케이블·인터넷 사업자 차터커뮤니케이션스와 소비자용 모바일 서비스 제공을 위한 파트너십을 논의했습니다. 차터는 미국에서 ‘스펙트럼’ 브랜드로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데요. 양사는 스페이스X의 모바일 트래픽 일부를 차터의 지상 인터넷 인프라로 처리하는 방안 등을 협의했습니다.
지금은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 위성망만으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스타링크의 위성망과 차터의 지상망, 와이파이 인프라를 함께 묶는 정도에 그치죠. 쉽게 말해 통신망이 잘 깔린 도심이나 실내에서는 기존 지상 인프라를 활용하고, 기지국이 닿지 않는 지역에서는 위성을 활용하는 겁니다.
스타링크의 저궤도 위성통신 인프라 분명 매력적입니다. 오지나 해상, 재난 상황처럼 기지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마트폰 이용자는 도심과 실내에서 데이터를 쓰죠. 스타링크는 특성 상 오지에서는 힘을 발휘하지만, 단위면적 당 높은 통신량이 발생하는 지역에 더 많은 위성을 배치하는 식의 대응이 어렵다 보니 품질 문제가 발생합니다. 건물 안, 지하, 사람이 몰리는 지역에서 안정적인 품질을 내려면 촘촘한 지상망이 필요하죠. 스페이스X가 차터와 손잡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도 스페이스X는 미국에서 T모바일과 협력해 위성 기반 휴대전화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서비스는 어디까지나 T모바일 가입자를 위한 부가 서비스 성격이 강합니다. 통신이 끊기는 지역에서 스타링크가 뒤를 받쳐주는 구조였죠.
이번에 거론된 소비자용 모바일 서비스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스페이스X가 스타링크 브랜드를 앞세워 직접 소비자와 계약하는 모바일 상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스타링크는 통신사의 빈틈을 메워주는 협력자가 아니라, 통신사의 고객을 겨냥하는 경쟁자가 됩니다.
스페이스X는 이를 위한 준비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에코스타는 지난해 11월 스페이스X에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AWS-3 비쌍대역 주파수 면허를 약 26억달러 규모의 스페이스X 주식으로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더 큰 규모의 주파수 거래도 진행된 바 있습니다. 모바일 통신 사업을 하려면 위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주파수와 지상 인프라, 단말 호환성까지 확보해야 합니다. 스페이스X가 이 퍼즐을 하나씩 맞추는 셈입니다.
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스페이스X와 차터의 모바일 제휴 가능성이 알려진 뒤 미국 통신주가 약세를 보였고, 차터 주가는 상승했죠. 투자자들이 스타링크의 모바일 시장 진입 가능성을 버라이즌, AT&T, T모바일 등 기존 통신 3사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물론 스페이스X가 당장 미국의 전국 이동통신망을 통째로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동통신 사업은 위성을 많이 쏘아 올린다고 곧바로 완성되는 사업이 아닙니다. 촘촘한 기지국, 실내 커버리지, 통화 품질, 단말 인증, 고객센터, 요금제 운영까지 모두 필요합니다. 소비자용 통신사업은 기술 사업인 동시에 거대한 운영 사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스페이스X가 곧바로 독립 이동통신사처럼 움직이기보다는, 모바일 가상망사업자 형태나 케이블 사업자와의 결합상품 형태로 시장을 두드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차터와의 논의도 그런 현실적인 진입 경로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움직임이 흥미로운 이유는 스타링크의 입지가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스타링크 모바일은 “통신이 안 터지는 곳에서도 연결해준다”는 보완재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스페이스X가 소비자용 모바일 상품을 직접 내놓는다면, 스타링크는 더 이상 통신사의 뒤를 받쳐주는 망에 머무르지 않고, 통신사의 고객을 직접 노리는 서비스가 됩니다.
스페이스X의 구상이 현실화되면 미국 통신 시장의 경쟁 방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케이블 인터넷, 와이파이, 위성 연결을 묶은 저가형 모바일 상품이나 음영지역 특화 요금제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통신 3사가 전국망과 품질을 앞세워 시장을 지켜왔다면, 스페이스X는 “어디서든 연결된다”는 이미지를 앞세워 틈새를 파고들 수 있습니다.
스타링크는 처음부터 통신사를 대체하겠다고 등장한 서비스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위성망이 넓어지고, 주파수를 확보하고, 지상망 파트너까지 확보했습니다. 한때 통신사의 빈틈을 메우던 보조망이 이제는 통신사의 시장을 흔드는 경쟁자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