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현장에서, 대학생들의 반발은 AI를 향한 슈미트 전 CEO의 낙관적인 비유에서 터져나왔습니다. 그는 AI 에이전트들이 개인이 혼자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을 도울 수 있다며, 이를 “로켓에 탑승하는 것”에 비유했는데요.
이는 빅테크들이 흔히 쓰는 수사입니다. AI를 쓰면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더 크게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죠. 문제는 이 메시지가 졸업생들에게 지나치게 자주 들린, 피로한 이야기였던 겁니다.
이제 막 노동시장에 들어가야 하는 세대에게 AI는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닙니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이 앞으로도 의미가 있을지, 첫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신입에게 주어지던 업무가 AI로 대체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드는 현실적인 위협이죠. 그러니 “AI라는 로켓에 올라타라”는 메시지의 반복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변화에 순응하라는 일종의 선전 방송처럼 들린 겁니다.
해당 상황은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비슷한 사례가 다른 대학에서도 이어졌는데요.
미들테네시주립대 졸업식에서는 연사가 “AI가 음악과 미디어 산업을 바꾸고 있다”고 언급하자 학생들이 야유했습니다. 플로리다 센트럴대 졸업식에서도 AI를 산업혁명, 노트북·스마트폰의 첫 등장에 비유한 연설이 반발을 샀습니다.
애리조나 글렌데일 커뮤니티칼리지에서는 실제로 AI 기술이 오류를 일으키면서 조소의 대상이 된 적도 있습니다. 졸업식 현장에서 AI 음성 시스템이 졸업생 이름을 잘못 읽거나 누락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이 터진 겁니다. AI가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바로 그 자리에서, AI가 가장 기본적인 졸업생 호명조차 제대로 못한 거죠.
기업과 빅테크 인사들은 AI를 대체로 ‘기회’로 봅니다. 더 적은 시간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개인의 생산성이 올라가며, 새로운 산업과 직업이 생겨난다는 식이죠. 이런 설명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서는 졸업생들에게는, 앵무새처럼 ‘AI’를 외치는 정부와 기업, 언론 등에 대한 반감이 점점 더 쌓이고 있는 상황이죠.
생성형 AI 확산 이후 기업들은 개발, 디자인, 마케팅, 미디어, 사무직 등 여러 분야에서 AI를 도입하는 동시에 ‘인력 효율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감원 칼바람’, ‘대규모 구조조정’ 같은 단어는이제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됐죠.
한편 졸업생들은 학자금 부담, 고용시장 축소를 실제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AI가 실제 인재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느냐’의 논의와 별개로,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신규 고용을 줄이고, 대규모 인력 감축을 계속하고 있는데요.
이런 현실이 누구보다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취업전선 일선에 뛰어드는 대학 졸업생들일 겁니다.
그렇다고 졸업생들의 반응을 1800년대 기계가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실제 기계 파괴 행위 등이 나타났던 ‘러다이트 운동’과 동일한 맥락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많은 학생들은 문법 보조, 검색, 요약, 코딩, 학습 보조 등에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즉 AI를 전혀 쓰지 않겠다는 태도라기보다는, AI를 둘러싼 낙관론을 앵무새처럼 재생산하는 기업·언론·연사들에게 반감을 드러낸 거죠.
기술 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남의 일처럼 “이건 피할 수 없는 미래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책임없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최근 그랜드밸리주립대 졸업식에서 AI가 노동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졸업생들에게 “여러분에게는 AI, 즉 실제 지능(actual intelligence)이 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습니다. 같은 AI 이야기라도, 학생들이 느끼는 불안에 어떻게 다가갔는지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온 겁니다.
어쩌면 대학생들은 빅테크의 장미빛 AI 전망 그 자체보다는, 기계적으로 반복되고 재생산되는 ‘패배 메시지’에 지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