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대한 과도한 낙관은 시장에서 과잉투자와 버블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지난해 화두였던 초인공지능(ASI)이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죠.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고 스스로를 개선하는 AI가 곧 등장할 수 있으며, 여기에 먼저 도달한 기업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경쟁자를 따돌릴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습니다. 메타는 아예 ‘초지능연구소’를 만들고 거액을 들여 인재 영입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ASI 경쟁을 앞다퉈 선언했던 기업들은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빅테크들의 분위기도 ‘초인공지능을 최대한 빨리 만들자’는 쪽에서 다소 멀어진 모습입니다. 대신 최근 새롭게 부상한 화두가 ‘피지컬 AI’죠.
피지컬 AI는 생성형 AI가 텍스트와 이미지 같은 디지털 영역에서 작동하던 것을 넘어, 로봇·자동차·공장 설비처럼 물리적 하드웨어가 실제 환경을 인식하고 판단해 움직이는 단계로 확장하는 개념입니다. 말하자면 AI가 화면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공장과 도로, 창고, 작업장으로 걸어 나오는 셈입니다.
특히 제조업에서는 피지컬 AI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자동차 공장에서는 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로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단순 반복 작업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력난을 줄이고, 위험하거나 지루한 작업을 로봇에게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그림이죠.
다만 한가지 머릿속에 넣어둘 점은, 거대언어모델 기반 생성형 AI와 피지컬 AI 기술은 같은 AI 기술로 분류되지만 아직까지는 상당히 다른 분야라는 겁니다. 거대언어모델은 때때로 환각(할루시네이션)을 내놓거나, 정보를 잘못 참조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만, 자동차를 제어하는 AI가 그런 '사소한 오류'를 발생시킨다면 어떨까요. 거대언어모델은 말 그대로 언어모델일 뿐, 실제로 로봇을 움직이는 방식에 곧장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은 아닙니다. 피지컬 AI가 이슈몰이를 하면서 투자와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생성형 AI만큼 폭발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기존의 로봇기술에 대한 관심이 늘고, 이에 개발이 조금 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실제로 현재까지 확인된 성과는 아직 제한적입니다. 피지컬 AI가 곧바로 자동차 조립 전반을 바꾸어 놓을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까지는 부품 적재와 운반, 라인사이드 보조 작업처럼 일부 공정에서 가능성을 시험하는 단계에 가깝죠.
가장 구체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곳은 BMW입니다. BMW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Figure AI의 휴머노이드 로봇 ‘Figure 02’를 투입했습니다. BMW에 따르면 Figure 02는 2025년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BMW X3 3만대 이상 생산을 지원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10시간 교대 근무를 수행했습니다. BMW는 이를 두고 피지컬 AI가 실제 생산 조건에서 측정 가능한 부가가치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는데요.
Figure 02는 11개월 동안 BMW 공장에 배치돼 9만개 이상의 부품을 적재했고, 누적 가동시간은 1250시간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이나 전시장이 아니라 실제 자동차 공장에서 일정 기간 작업을 수행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물러서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Figure 02가 맡은 작업은 자동차 조립라인 전체를 대체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차체 부품을 옮기고 정해진 위치에 적재하는 반복 공정에 가깝죠. 기존 자동화 설비로 처리하기 까다로운 작업을 완벽하게 대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피지컬 AI’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잊어버리기 쉽지만, 공장에는 이미 다양한 자동화 설비가 있습니다. 단순 물류와 정해진 경로 운반은 자율이동로봇(AMR), 컨베이어, 산업용 로봇이 맡고 있습니다. 이들 설비는 속도와 안정성, 유지보수 측면에서 오랜 기간 검증돼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휴머노이드가 이들과 경쟁하려면 단순히 사람처럼 생겼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비싼 가격과 상대적으로 느린 작업 속도를 정당화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휴머노이드 로봇의 장점은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된 작업공간에 별도 레이아웃 변경 없이 투입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문제는 이 장점이 실제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죠.
상용화의 관문도 뚜렷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개념 단계에서 상업적 현실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안전 시스템, 지속 가동시간, 손재주와 이동성, 비용 절감이 모두 필요합니다. 특히 중국을 비롯해 휴머노이드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상당수 로봇은 여전히 손재주와 안전성, 가동시간에서 한계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공장 현장에 필요한 것은 ‘멋진 동작을 성공하는 로봇’이 아니라 ‘매일 실패 없이 일하는 로봇’입니다. 자동차 공장은 초 단위로 공정이 돌아갑니다. 부품 위치나 조립 순서가 조금만 어긋나도 전체 라인 효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휴머노이드가 사람 옆에서 일하려면 넘어짐, 충돌, 오작동에 대한 안전 기준도 충족해야 합니다.
최근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은 화려한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지만, 사실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구나무를 서고 공중제비를 도는 능력보다, 수천 번의 반복 작업을 일정한 품질로 수행하는 신뢰성이 더 중요하죠. 로봇이 한 번 멋진 시연을 보여주는 것과, 매일 같은 속도와 품질로 공장 라인에 기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또 피지컬 AI에 대한 회의론도 나옵니다. 튜링상 수상자인 얀 르쿤 전 메타 수석 AI 과학자는 "휴머노이드 로봇 업체들이 실제로 로봇을 실제로 유용하게 만들 만큼 충분히 똑똑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기획된 휴머노이드 로봇 시연은 멋져 보이지만, 물리 세계를 이해하고 작업을 계획하는 AI 역량은 여전히 병목이 생기는 분야고, 진척이 더디다는 거죠.
공장 현장에서 성과를 인정받으려면 멋진 시연보다 실제 생산라인에서의 가동률, 불량률, 유지보수 비용, 안전성, 작업 전환 속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로봇이 얼마나 사람처럼 보이는지가 아니라, 기존 자동화 설비보다 더 싸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거죠.
피지컬 AI의 승부처는 SF영화 같은 장면을 얼마나 빨리 보여주느냐가 아닙니다. 로봇이 공장 안에서 얼마나 오래, 안전하게, 싸게, 그리고 실패 없이 일할 수 있는지를 입증하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