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디즈니가 생성형 AI에 관심을 가져온 흐름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 제작 과정에서 콘셉트 아트, 스토리보드, 프리비주얼 단계는 시간과 인력이 반복적으로 투입되는 구간입니다. 생성형 AI는 이 초기 공정을 보조하는 도구로서 충분한 실용성을 갖고 있고, 디즈니 역시 내부 테스트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픈AI와의 협력은 이런 실험을 범용 모델 차원에서 본격화하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번 계약의 핵심은 ‘투자’와 ‘라이선스’를 동시에 묶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디즈니 IP가 AI 학습과 결과물 생성 과정에서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사전에 규정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생성형 AI를 둘러싼 최대 쟁점이 저작권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디즈니가 가장 민감한 지점부터 손을 댄 셈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생성형 AI의 학습 데이터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둘러싸고 다수의 소송과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디즈니 또한 오픈AI와 계약을 체결하기 직전 구글에 저작권 침해를 중단하라며 내용증명을 발송했죠. 디즈니처럼 캐릭터와 세계관 자체가 핵심 자산인 기업으로서는, 자사 IP가 무단 학습되거나 AI 결과물로 재생산되는 상황을 방치하기 어렵습니다. 오픈AI와의 라이선스 계약은 ‘허용된 범위 내 사용’이라는 기준선을 명확히 긋는 동시에, 향후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디즈니가 선제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근거를 확보하는 효과를 갖습니다.
이 때문에 해외 일부 매체와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계약을 디즈니의 ‘선방어 전략’으로 평가합니다. 생성형 AI의 확산 자체를 막기보다는, 신뢰 가능한 파트너를 선택해 통제 가능한 환경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입니다. 디즈니가 과거 스트리밍 전환 과정에서 넷플릭스와의 라이선스 관계를 정리하며 주도권을 회수했던 사례를 떠올리면, 이번 선택 역시 장기 전략의 연장선으로 읽힙니다.
오픈AI가 얻은 상징적 파트너
“저작권을 무시하지 않는 AI”라는 메시지
오픈AI 입장에서도 디즈니는 상징성이 매우 큰 파트너입니다. 저작권 관리에 가장 엄격한 콘텐츠 기업 중 하나와 공식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 자체가, 향후 다른 미디어 기업들과의 협상에서 중요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성형 AI 기업들이 가장 자주 직면하는 비판인 ‘무단 학습’ 논란에서, 오픈AI는 “라이선스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모델”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결국 이번 디즈니–오픈AI 협력은 기술 실험이자, 동시에 '업계 표준(스탠다드) 만들기' 과정에 가깝습니다. 생성형 AI 시대에 콘텐츠 기업과 AI 기업이 충돌 대신 계약과 투자로 관계를 재정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사례인 셈입니다. 다만 이 모델이 업계 전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디즈니처럼 자본력과 IP를 동시에 보유한 소수 기업만의 선택지로 남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