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게임 플랫폼이 만약 '콘솔·윈도우 PC 수준의 AAA 게임 생태계'라는 의미라면, 맥은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습니다. 다방면에서 예전보다는 게이밍 기기로서의 입지가 높아졌죠.
특히 M1, M2, M3 등의 CPU·GPU가 통합된 애플 실리콘이 나온 이후, 전력 효율성과 성능 면에서 맥이 이전보다 게임 구동능력이 현저히 좋아졌다는 평가가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노트북 영역에서는 발열, 전성비에서 윈도우 노트북에 대한 우위를 지니고 있죠.
AAA 타이틀의 맥 지원 확대도 큽니다. 최근 ‘사이버펑크 2077: Ultimate Edition’ 같은 대작 게임이 애플 실리콘 맥 버전으로 출시되면서, 맥이 단순한 “사무용/미디어·디자인용 기기”가 아니라 게임도 어느 정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상태고요.
주목할 만한 부분은 PC 게임 유통 분야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는 스팀(Steam)이 애플 실리콘을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스팀 클라이언트가 애플 실리콘을 네이티브로 지원하게 된 베타 버전 발표됐습니다. 특히 업계에선 로제타(Rosetta) 2(인텔용 코드 에뮬레이션) 의존도를 줄이면서 전반적인 성능 향상이 기대된다는 평가를 내놨죠.
지난 6월에는 애플이 맥/아이패드/아이폰 통합 게임 앱인 ‘애플 게임스(Apple Games)’ 앱 허브를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게임 추천·리더보드 등의 소셜 기능, 게임 오버레이 기능 등을 보다 강화하는 움직임입니다. 또 지난해에는 윈도우용 게임을 맥으로 옮기는 Game Porting Toolkit 같은 개발자용 툴킷도 내놔 호환성 확보하려고 있고요.
다만 높은 그래픽 요구 사양(고프레임, 고해상도, 레이트레이싱 등)에 대한 GPU 성능이 아직 윈도우 PC나 콘솔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경우가 많고는 점이 한계로 꼽힙니다. RAM 용량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죠.
특히 작년까지만 해도 신형 맥북, 맥미니(Mac Mini) 등의 최저 RAM 사양은 8GB로 제공됐고, 16GB로 업그레이드하려면 15만원 이상의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맥 버전으로 출시된 '사이버펑크 2077' 등의 AAA 게임은 최저 16GB 이상의 RAM 용량을 요구하면서 기존 맥 이용자를 바탕으로 게이밍 역량을 확보하려는 전략은 곧장 좌절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최근 애플이 부랴부랴 최저 제공 RAM을 16GB로 높였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용자의 RAM 용량은 8GB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죠.
또 발열 문제도 있습니다. 보급형 맥이나 '맥북 에어'와 같은 모델의 경우 고강도 연속 작업을 상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열 관리 시스템이 부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맥북 에어' 노트북의 경우 아예 쿨링팬이 탑재되지 않은 '팬리스' 설계를 적용했기 때문에, 탑재된 프로세서에 비해 실망스러운 성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타 장단점을 떠나 가장 문제는 플랫폼 내에 지원되는 게임이 제한적이란 점입니다. AAA 게임의 대부분은 맥 버전 출시가 늦거나 지원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고, 개발사 입장에서 맥 버전 최적화에 많은 자원을 들이기보다는 윈도우 중심 개발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죠. 얼마 되지 않는 맥 사용자 시장 규모로 맥 최적화가 수익성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임 이용자도 보면 맥을 게임용으로 사용한다는 인식은 거의 없고, 게임 환경을 위해 윈도우 PC나 콘솔을 선택하는 쪽이 더 익숙합니다. 고급 그래픽 효과 등이 엔비디아 그래픽카드를 전제로 한 윈도우 버전만큼 안정적이거나 완전하게 지원되지도 않고요.
따라서 맥이 게이밍 플랫폼으로 진정으로 부상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무엇보다 최근 AAA 게임들의 급격히 늘어난 용량 RAM·VRAM 사용량을 고려하면, 16GB RAM도 한창 모자랄 지경이기도 하고요. 게임 개발사 및 퍼블리셔들이 맥 버전 개발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고, 출시 타이밍을 윈도우 버전과 크게 차이나지 않게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다만 한번 시장에 안착하면 순식간에 급부상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맥은 폼팩터(제품 형태)와 프로세서(애플 실리콘 M 시리즈)가 한정적이고, 이는 게임 개발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할 시나리오를 압축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니다. 수백 가지가 넘는 윈도우 하드웨어 환경(인텔·AMD CPU/엔비디아·AMD GPU의 조합 경우의 수)에 비해 개발이 수월해질 수 있다는 거죠.
또 사용자 입장에서도 게임을 위해 필요한 사양을 파악하기가 수월합니다. 맥은 최신 프로세서(M3, M4)와 램 용량(16GB, 32GB, ~) 정도만 알아도 적절한 제품을 고를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 사용환경 시나리오가 압축된다는 점에서는 콘솔과도 유사한 특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윈도우 PC를 구매할 때, 프로세서를 고르기 위해선 인텔 코어 울트라·AMD 라이젠 시리즈의 세대·라인업·기능·벤치마크 성능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GPU는 RTX 50 시리즈인지, 40시리즈를 고를지 결정해야 하겠죠. RTX 4080과 RTX 5070 중 어느 것이 성능이 좋은지, 지원되는 프레임 레이트 향상 기술(DLSS)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적절한 메모리 용량은 얼마인지, 메모리를 몇 개로 구성할지(2~4개)도 고려해야 합니다. 사용하고자 하는 모니터의 해상도(UHD·QHD·FHD)도 빠질 수 없는 요소죠. 사실 하드웨어에 나름 빠삭한 기자 입장에서도 지인에게 적절한 PC·노트북을 추천해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가 열심히 골라서 추천을 해주더라도, 하드웨어 커뮤니티의 '검증 세례'를 과연 통과할 수 있을지, 저는 자신이 없거든요. 반면에 맥은 사용환경에 따라 적절한 제품을 추천해주기가 매우 편합니다.
결국 게이밍 시장에서 맥의 성패는 하드웨어 자체의 성능보다는 소비자 인식과 개발 환경을 어떻게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윈도우, 특히 인텔·AMD 기반 x86의 기존 지위를 쫓아가기 위한 적극적인 개발자·소비자 유인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이고요.
개인적으로는 맥이 게이밍 시장에서 역할을 확대하길 응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맥북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나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하나의 기업·플랫폼이 살아남은 환경보단, 여러가지 기업이 경쟁하는 환경이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