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지난 7월 오픈AI와 하드웨어 자회사 io 프로덕츠, 애플 출신 직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오픈AI가 AI 기기를 개발하면서 애플의 영업비밀을 부당하게 확보했다는 주장입니다.
애플은 지난 2월 오픈AI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고, 이에 하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오픈AI가 반박문을 통해 공개한 이메일을 보면 상황이 조금 이상합니다.
애플 측 외부 변호사는 오픈AI 법무책임자 체 창(Che Chang)에게 이메일을 보낸 뒤, 빠른 협조와 전화 통화에 감사한다는 메일을 다시 보냈습니다. 문제는 체 창이 그 변호사와 통화한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확인 결과 다른 사람에게 보내야 할 이메일이 잘못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오픈AI는 애플 측이 서로 다른 아시아계 성씨를 혼동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애플 측 변호사도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세계적인 기술기업의 영업비밀 소송입니다. 첨단 해킹이나 산업 스파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첫 장면은 회사 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이메일 오발송’이었던 겁니다.
오픈AI는 당시 애플이 이번 소송에 담긴 구체적인 의혹도 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문제가 있더라도 해결하고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고, 약 5개월 동안 별다른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소송을 제기했다는 설명입니다.
통화는 하지 않았는데 통화했다는 메일이 왔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더니 다음 연락은 소장이었던 셈이죠.
퇴사자와 관련해서는 더 신기한 장면도 등장하는데요.
애플은 전직 엔지니어 창 류(Chang Liu)가 퇴사 후에도 내부 기밀에 접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오픈AI는 창 류와 애플 직원들이 주고받은 아이메시지를 공개했습니다.
메시지에 따르면 애플 직원들은 창 류가 퇴사한 뒤에도 그의 파일을 복사하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자료를 옮길 때까지 아이클라우드 계정을 연결해 두겠다는 대화도 나옵니다. 이후에도 애플 직원들은 창 류에게 프로젝트 내용과 파일 위치를 물었고, 창 류는 관련 폴더와 담당자를 알려줬습니다.
평범한 회사에 대입하면 이렇습니다. 직원이 경쟁사로 이직했는데 회사가 출입증을 회수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직원들은 그에게 “지난번 보고서가 어디 있더라?”고 계속 물어보며, 직장에 좀 직접 와서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그러다 몇 달 뒤 회사가 이야기하는 겁니다.
“퇴사자가 왜 아직 우리 회사에 들어올 수 있죠?”
오픈AI는 창 류에게 접근권한이 남아 있던 건 애플이 퇴사자 계정과 시스템 권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법원이 따질 문제지만, 오픈AI는 그 전에 접근 자격 관리가 부실했으며, 잔여 업무를 위해 접근 자격을 유지했던 것은 애플 쪽이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물론 애플이 문을 잠그지 않았다고 해서 방 안에 들어가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창 류가 실제로 어떤 자료에 접근했고, 이를 오픈AI 업무에 사용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공개된 메시지만으로 오픈AI의 결백이 증명된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상황은 꽤 묘하죠. 애플은 기밀을 지키겠다며 소송을 냈고, 오픈AI는 기밀을 훔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며 양측의 이메일과 아이메시지를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법정공방이 감정을 동반한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건데요.
두 회사는 앞으로 사람과 AI가 소통하는 완전히 새로운 기기를 만들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챙겨야 할 기술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퇴사자의 ‘로그아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