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리니지라이크,
'재미있는 게임' 만드는 법 잊은 엔씨
‘리니지’로 시작된 신화가 균열을 맞고 있습니다. 한때 엔씨소프트의 ‘캐시카우’였던 리니지 기반 게임들이 흔들리고 있는데요. 나이스신용평가는 4월 4일, 엔씨소프트의 장기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습니다. ‘리니지M’, ‘리니지2M’, ‘리니지W’ 등 모바일 게임 매출이 2년 사이 무려 51%나 감소한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2022년 1조8640억 원이던 매출은 올해 9070억 원으로 줄었고, 신작들도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죠.
신작 부진은 숫자에서도 드러납니다. 2024년 엔씨의 EBITDA(감가상각 전 영업이익)는 0원, 영업이익률은 -6.9%를 기록했는데요. 리니지 매출 감소가 본업 수익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 것입니다.
사실 엔씨의 위기는 몇 년 전부터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리니지와 유사한 게임 구조, 특히 유저 간의 경쟁과 갈등을 부추기고, 현금성 재화를 소비해야 승리할 수 있도록 한 '리니지라이크'를 비판하는 사용자들은 적지 않았죠.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선 실재 현금을 아이템에 사용해야 하고, 사용자가 얼마를 쓰느냐에 따라 '강함'이 결정되는 구조, 흔히 말하는 ‘페이 투 윈(Pay-to-Win, P2W)’ 수익 모델(BM)을 차용한 게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P2W를 가장 매출로 잘 연결시킨 기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엔씨소프트입니다. 잘 만들어진 게임으로 어떻게 돈을 버는지에 대해서, 엔씨소프트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셈입니다.
'재미있는 게임이 돈도 잘 벌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엔씨소프트의 대답은 확실히 'No'였습니다.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데 노력을 투자하는 대신, '페이 투 윈' 수익 모델을 정교하게 갈고 닦으면 성과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보다 적은 인적·물적 자원을 투자해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는 게 당연합니다. 기업으로써 가장 합리적으로 움직인 결과, 엔씨소프트 주식은 2021년 게임업계의 '황제주(주당 100만원 이상)'가 됐습니다.
문제는 엔씨소프트가 정교하게 갈고닦은 '페이 투 윈' 수익모델이 소위 '지속가능'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용자의 경쟁심을 자극해 돈을 쓰도록 한 수익모델은 유저 피로감을 높였고, 동시에 게이머들의 경험의 질을 떨어뜨렸죠. 또 '리니즈라이크' 바깥의 게이머들에게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온 것도 컸습니다. 그 결과 '리니지' 유저는 억대 현금을 투자해 게임 내에서 높은 성과를 거두더라도, '리니지라이크' 외부의 게이머들에게 그 성과를 자랑할 수 없었습니다. 리니지를 플레이한다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던 겁니다.
실적이 감소하자 엔씨는 리니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신작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습니다. 2023년 ‘TL(쓰론 앤 리버티)’의 글로벌 론칭에 이어, 2024년 ‘호연’, ‘저니 오브 모나크’를 연이어 내놨지만, 리니지 시리즈와 같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습니다. 게이머들은 엔씨의 신작에서 '리니지'와 비슷한 '페이 투 윈' 수익모델을 금방 발견해냈고, 그 결과는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TL은 아마존 퍼블리싱으로 글로벌 진출에 나섰지만 빠르게 매출이 하락했고, 호연은 출시 직후 잠깐 매출 상위권에 진입했으나 이내 90위권으로 밀려났습니다.
퍼즐게임 ‘퍼즈업 아마토이’, 대전 액션 게임 ‘배틀크러쉬’ 등 리니지라이크의 틀을 깬 듯한 장르를 선보였지만, 대부분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배틀크러쉬는 출시 1년도 채 안 돼 서비스 종료 수순을 밟았죠.
핵심은 유저들이 엔씨의 주요 신작을 여전히 “껍데기만 바꾼 리니지”처럼 느낀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호연’은 무제한 PVP가 없지만, 랭킹 콘텐츠에서 상위권 유저에게 직접적인 능력치 보상이 주어져 사실상 경쟁을 유도합니다. 유저들은 “BM(수익모델)은 그대로인데 장르만 살짝 바꾼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죠.
엔씨는 올해 ‘아이온2’ 등 신작 출시를 예고하고 있지만, 매출 회복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신용평가사도 “신작으로 인한 수익성 회복과 재무 안정성 유지 여부가 등급 유지의 핵심”이라며 냉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제, 게임업계는 '재미있고 유저 친화적인 게임'이 반드시 매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갈고닦았던 수익모델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지금, 엔씨는 다시금 ‘무엇이 유저를 즐겁게 만드는가’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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